도자, 이야기를 품다①
- 조선 백자의 보고, 관요-
안녕하세요, 토야입니다.
다들 주말은 잘 보내셨나요~?
어제 5월 31일을 기점으로,
마침내 2015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가 그 막을 내렸습니다.
무려 38일간의 긴 여정이었는데요.
끝나고 돌이켜보니 또 순식간이 흘러가 버린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
그래도 2017년에 또 비엔날레가 있으니까!
아쉬움은 잠시 접어두도록 할께요~! ^^
그리고 대신 이번 시간부턴
도자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려 드리려고 해요.
그래서 오늘은 그 첫번째 시간입니다.
여러분들이 패션 트렌드를 살표보기 위해 거리로 직접 나선다면,
어떤 장소가 떠오르시나요~?
서울을 예로 들자면 패션 피플들이 서식(?)한다는
신사동 청담동, 이태원 등이 있는데요.
과거 도자에도 도자만의 트랜드가 있었답니다.
바로 관요인데요!!
당 시대 도자의 핫한 트랜드를 읽을 수 있었던 관요,
그 이야기를 들려 드릴께요. 자기~♥
관청에 그릇을 공급하다, 관요의 등장
관요는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설치 운영된
관청에서 필요로 하는 사기 제작을 위한 사기제조장(沙器製造場)이었습니다.
그래서 통일신라 시대에는 경주를 중심으로 천북면 일대에
토기요지가(土器窯址) 집중되어 있으며,
고려 시대에는 수도인 개성과 가까운 서해안지역에
청자요지(靑瓷窯址)가 형성되었습니다.
한편 조선 시대에는 전국으로 확대되어
<경국대전>에 의하면 조선 후기에는 무려
550인의 사기장이 활동했다고 합니다.
조선 관요를 대표하는 사옹원 분원
조선 왕실에서의 백자의 수요가 점점 늘어남에 따라 질 좋은 백자 확보를 위해
조선 정부는 직접 공장을 설치하여 필요한 백자를 생산하게 되는데요.
왕궁에서 가까워 교통이 편리하고 수목이 무성하여 땔감의 조달이 유리한 광주 땅에
관요인 사옹원(司饔院) 분원(分院)을 설치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사옹원 분원은 조선의 왕실과 중앙정부에서 필요로 하는 백자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역할과
왕실과 궁궐의 음식과 연회를 담당하는 궁중주방의 역할을 하였답니다.
그렇게 경기도 광주는 조선시대 약 500년간 백자를 만드는 역할을 담당하였고,
덕분에 지금도 분원가마터가 340여개소에 분포하고 있답니다.
이 가마터에서는 왕실에서 사용하는 청화백자를 비롯한 당대 최고급 백자는 물론
궐내에서 쓰는 허드렛그릇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백자의 생산흔적이 남아있어
조선백자의 보고라 불리우고 있습니다.
땔감 따라 이동하던 분원의 정착
분언이 한 장소를 선택하여 백자를 만들기 시작하게 되면,
대체로 10년 정도가 지나면 주변에 나무를 모두 잘라 쓰게 되어
다시 나무가 많은 곳으로 분원을 옮겼습니다.
그래서 광주에만 340여개소의 백자 가마터가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분원의 잦은 이동은 화전민을 비롯한 주민들의 원성과
막대한 이동 비용 때문에 문제가 많았는데요.
그래서 조선 후기에는 분원을 한강변에 고정시키고,
한각을 오가는 땟목과 상선응로부터 나무와 세금을 걷어 분원운영에 활용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시설을 고정하고, 장기적으로 규모를 대영화할 수 있는 장점을 갖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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