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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계의 마티스! - 루디 오티오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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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토야입니다~!


  

() 욕심쟁이들 / () 태양의 서커스 / () 야상곡

 

[도자 속 회화] 에서 소개해드렸던 작가 루디 오티오 기억나시죠? 루디 오티오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야수파의 마티스, 초현실주의 화가 샤갈의 작품이 연상되고는 하는데요. 오늘은 도예계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루디 오티오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드리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루디 오티오의 성장 배경

 

루디 오티오

[출처 : archiebray.org]

 

루디 오티오(Rudy Autio)1926108, 미국 내 광산도시로 알려진 몬타나주 뷰트에서 태어났습니다. 1920년대 뷰트는 광산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음악, 미술, 스포츠 등 다양한 문화가 혼합되어 있어 문화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는데, 이는 다양한 인종들로 구성되어 여러 문화가 어울린 복합문화를 형성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합니다.

 

 

루디 오티오는 어린 시절부터 핀란드 이민자 공동체 속에서 자라며 자연스럽게 핀란드 문화를 경험했죠. 특히 이 때 루디 오티오는 교회에서 소장하고 있던 조각, 그림들을 통해 예술적 감성을 기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학창시절의 예술경험은 그가 예술가로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죠. 1935년 루디 오티오가 9살일 무렵에는 학교 내 W.P.A(Works Progress Administration)라는 예술 프로그램이 개설되어 학생들이 지역 예술가들에 의해 질 높은 미술교육을 직접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피터 볼커스와 루디 오티오

[출처 : www.voulkos.com]

 

군대 제대 후 몬타나에서 건축학 공부를 하던 그는 고등학교 때 미술 선생님이던 캐롤린 자콥스(Carolyn Jacobs)를 우연히 만나 미술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 오랜 친구이자 가장 중요한 작업동료인 피터 볼커스(Peter Voulkos)와 조우했고 그를 통해 처음으로 도예를 접했습니다. 루디 오티오는 이후 몬타나에서 당시 최고의 화가였던 밥 드 위즈(Bob De Weese)를 만나 큐비즘을 비롯한 미술사와 현대 미술을 접하면서 미술에 대한 열정을 지속적으로 키울 수 있었습니다.

 

1950년 몬타나 주립대 졸업 후에는 워싱턴 주립대학 대학원에 진학하여 주로 조각에 몰두했습니다. 이 시기 즈음, 벽돌을 생산하던 아치 브레이(Archie Bray Foundation, in Helena, Montana)에서 피터 볼커스와 함께 작업장과 가마 등을 지으며 현재 아치 브레이의 기초를 만들기 시작했고, 1951년 봄, 루디 오티오와 피터 볼커스가 주축이 되어 도예가를 위한 스튜디오와 아트센터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한때 루디 오티오는 피터 볼커스와 함께 지거링(Jiggering)을 통한 슬립캐스팅(slipcasting)방법으로 찻주전자, 찻잔, , 사발 등 실용적 그릇을 만들기도 하였으나 이러한 작업을 차츰 줄이고 조각 작품을 만드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루디 오티오의 작품 세계

 

루디 오티오는 처음에 작품을 만들 시 코일링 기법을 활용하여 기형을 잡아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밖에도 밴딩기법(벽돌을 쌓아 올리듯 빚어낸 흙판들의 끝을 서로 이어서 쌓아올리는 방법), 덴버 테라코타 공장에서 몰드로 기형을 만들고 흙판을 밀어 넣어 찍어내는 가압성형을 배워 테라코타 부조작품을 제작할 때 활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기법을 시도하였으나 그가 주로 사용하는 기법은 바로 판 성형이었고, 여기에 코일링 기법을 섞어 쓰면서 형태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작업하고 있는 루디 오티오

[출처 : 유투브]

 

초기에는 흙의 거친 표면 느낌과 함께 색 화장토를 입혔으며, 부분적으로 금속 광택이 느껴지는 러스터를 주로 사용하여 작품에 흑백 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검은 선을 굵게 사용하다가 이후 점차 가늘어지고 나중에는 부분을 강조하는 포인트로 축소되었죠. 그러나 점점 다양한 색들이 도입되어 쓰이다 나중에는 파스텔 톤의 색감들로 정착하였습니다. 

 

 

() Reno Beach / () Blue Mountain Horess

[출처: () www.1stdibs.com / () www.veniceclayartist.com]

 

소재는 대게 인간과 동물(, , 소 등)의 형상이 사용되는 데 이러한 소재들은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의 종교화를 연상케 하죠. 실제로 루디 오티오는 주로 흙판으로 만든 나의 그릇들은 내가 젊었을 때 존경했던 잭슨 폴록, 데 쿠닝, 투르코브 등의 1950년대 뉴욕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이 발산했던 미학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리베라, 오로츠코, 타마요와 같은 멕시코의 벽 화가들이나 일본의 노구치 등의 구상작품, 그리고 행크 멀로이와 마리노 마리니의 누드와 말, 피카소와 마티스와 샤갈의 회화 등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답니다. 작품의 형태는 초기에 정면성이 강한 작품을 제작하다가 80년대 들어서면서 후면으로 돌아가는 부분을 자연스럽게 묘사하여 입체감을 강조하는 방법으로 발전하였죠.

 

오랜 시간 세계 도예사의 변방이었던 미국은 추상 표현주의 도예의 확장과 전파로 인해 현대도예의 중심 국가로 성장하게 되었으며 그 배경에는 루디 오티오의 조형 활동의 영향이 가장 컸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루디 오티오가 미국 도예계에 끼친 영향은 대단했다고 합니다.

 

오늘은 루디 오티오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어떠셨나요 여러분? 현재 이천 세라피아에서 진행 중인 [도자 속 회화] 에서 루디 오티오의 작품을 직접 만나볼 수 있으니 그 기회 놓치지 마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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