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토야입니다!
새하얀 이미지가 떠오르는 백자는 조선 시대에 대표하는 도자기인데요. 오늘은 백자의 원료인 백토로도 유명한 강원도의 양구 백자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양구 백자박물관]
양구의 가마터에 관한 가장 이른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 토산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요. 이에 따르면 전국의 139개 자기소 가운데 강원도 내에는 강릉도호부 1곳, 울진현에 1곳과 함께 양구현에 2곳의 자기소가 있었습니다. 또한, 중종 25년에 간행된 ‘신중동국여지승람’ 토산조에는 전국의 자기 생산지 32개소 가운데 강원도로서는 유일하게 양구현 만이 명시되어 있는데요. 앞의 두 내용을 종합해 보면 조선 초기 139개소에 달했던 자기소가 16세기 들어 32개소로 축소되었고, 그중에서도 강원도에는 유일하게 ‘양구’만 기록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15~16세기 양구지역은 도자기 생산의 요지였다는 것이겠죠?
도자기 생산지로서 양구는 이미 고려 시대부터 주목받는 곳이었는데요. 푸른 산에 둘러싸여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 흰 백자를 만드는 양질의 백토가 매장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토는 질이 좋아 조선왕조 500년간 관요의 왕실백자 생산에 쓰였으며, 양구지역에서는 고려 시대부터 20세기까지 600여 년간 백자생산을 지속하였다고 하는데요. 양구의 백토는 불순물이 약간 함유된 백운모계 고령토 질 도석으로, 입도가 대체로 작고 균질하여 백자를 제작하는 데 좋은 원료가 될 수 있었습니다. 좋은 질의 백토가 매장되어 있어 조선 후기 왕실 분원에서 생산되던 백자원료의 주요 공급처의 역할도 할 수 있었는데요. 또한, 계속해서 원료가 분원으로 옮겨 갔기 때문에 그 원료의 품질을 확인하기 위해 미리 구워보는 시험 번조소로서의 역할도 담당하였습니다.
[출처: 양구 백자박물관]
17~18세기의 양구 백자는 백색 또는 회백색을 띠며, 대부분 오목 굽에 모래 받침으로 포개 구웠는데요. 특히, 오미리에서는 철화로 대접이나 접시의 외면에 간단한 선문이나 초화문을 그린 백자 편들이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18~20세기의 양구 백자는 무문에 낮은 다리 굽 접시, 대접류와 굽이 높고 각진 제기류를 비롯한 다양한 기종이 발견되었는데요. 원문 안에 글자를 넣은 청화 문양 외에 꽃, 풀, 물고기, 문자 등 매우 다양한 문양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특히 송현리에서는 대접 안 바닥에 동화로 무늬를 넣은 것이 발견되어, 그간 밝혀지지 않았던 동화 백자의 생산지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가 될 수 있었다고 하네요.
양구 지역에서는 현재까지도 양구 백자의 역사를 기억하고자 애쓰고 있는데요. 대표적으로는 양구 백자박물관을 운영하여 양구 백자의 600년 역사를 한곳에 보관하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백자의 생산지로서의 역할을 하였던 양구, 그 역사가 양구 백자 속에 고스란히 살아숨쉬고 있는 것 같네요!
토야와 함께 알아본 양구 백자 어떠셨나요? 다음에도 더 알차고 재미있는 도자 이야기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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