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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16.11.22 초기 고려청자의 비밀을 만나다! - 고려 청자 요지 공방터 발굴
  2. 2016.05.26 [인포그래픽] All about 도자기 - 3. 한국도자기의 역사 Part. 2
  3. 2015.02.27 [도자이야기] 토야가 들려주는 도자기의 역사⑤
  4. 2015.02.26 [도자이야기] 토야가 들려주는 도자기의 역사④
  5. 2015.02.25 [도자이야기] 토야가 들려주는 도자기의 역사③
  6. 2014.11.26 [도자여행가는날]곤지암도자공원 나들이~!
  7. 2013.06.12 완벽한 S라인 몸매 [청자 상감 구름 학무늬 매병] (6)
  8. 2013.02.28 [청자연적] 국보 제 270호 청자 원숭이 모양 연적
  9. 2012.12.27 고려말~조선초 가마터가 추가로 발굴되었습니다~*
  10. 2012.11.19 한국과 중국 간에 본격적인 도자예술 작가교류가 시작됐습니다~*
  11. 2012.11.12 불과 흙, 검은 빛으로 빚어진 ‘흑유’
  12. 2012.11.01 고려청자의 또 다른 이름 ‘비색 청자’

초기 고려청자의 비밀을 만나다! - 고려 청자 요지 공방터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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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토야입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도자기라 할 수 있는 고려청자! 최근 이 고려청자와 관련해서 고려 시대 초기 청자를 생산했던 공방터가 발견되었다고 하는데요. 토야와 함께 자세한 내용 알아보실까요?


[출처 : 전북도민일보]


고려청자는 모든 사람들이 알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고려시대의 초기 청자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었죠. 그런데 바로 지난 10월 사적 제345호 고창 용계리 청자요지 발굴조사에서 고려시대 초기 청자를 제작했던 공방지와 감독시설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최초로 확인되었습니다.


[출처 : 고창코리아]


이번 발굴조사는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대한문화재연구원에서 정밀발굴조사를 실시했으며 초기청자 가마와 관련된 공방지와 대형 건물지 및 청자편, 기와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이번 발굴이 무엇보다도 뜻 깊은 이유는 바로 초기 청자의 공방터가 조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초기 청자란 강진과 부안에서 청자를 생산하기 전인 10~11세기의 청자를 뜻합니다. 이번에 발굴된 공방터는 각각의 작업 공간이 갑발(匣鉢, 도자기를 구울 때 담는 큰 그릇)로 나뉘어 있다는 점으로 보아 당시 공정이 분업화 되어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출처 : 고창코리아]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공방지와 건물지 등 관련 시설이 확인됨으로써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초기 청자 제작 공정은 물론, 한국 도자사의 연구에도 중요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어떠셨나요 여러분? 알면 알수록 더욱더 무궁무진해지는 도자기의 세계! 앞으로도 토야가 계속해서 흥미진진한 도자 이야기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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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그래픽] All about 도자기 - 3. 한국도자기의 역사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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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싶었지만 알기 어려웠던 도자기에 대해 자세히 알려드립니다!

All about 도자기 - 세 번째 시간!

인포그래픽으로 알려드리는 한국 도자기의 역사 Part. 2!

지금 바로 토야와 함께 떠나보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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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이야기] 토야가 들려주는 도자기의 역사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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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이야기] 토야가 들려주는 도자기의 역사⑤



 

 

 

 

 

 

  안녕하세요, 블로그지기 토야입니다.

오늘은 도자기의 역사 마지막 시간입니다.

지금까지 그릇의 기원인 토기의 탄생부터

유리, 고려청자, 분청사기에 대해서 들려드렸는데요.

마지막으로 조선백자 이야기 들려드릴께요.

그리고 다음 시간부터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도자기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조선백자 이야기,

토야와 함께 떠나볼까요~? 자기♥

 

 

 

절제와 지조의 상징, 조선백자 

 

 

백자는 고려 초기부터

청자와 함께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요.

조선시대에 오면서 주류를 이루게 되고,

조선백자라는 이름을 갖고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성행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도자문화가 왕성하게 꽃피워

청자와 백자 모두 발전하였으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큰 난리를 겪으면서

요업이 급격히 침체되었습니다.

하지만 18세기에 경제력이 회복되고

대외무역도 활성화되면서

다시 융성하게 되었습니다.

 

 

 

 

조선백자의 가장 큰 특징은

조선시대 사람들의 정신이 반영되었다는 점입니다.

조선시대의 대표 정치이념인 성리학은

효, 제, 충, 신, 에, 의, 염, 치 등을 덕목으로 하는

청빈낙도를 규범으로 삼았습니다.

다시 말해 인위적인 가미보다는

절제의 미를 추구했고,

그 결과 단아한 모습의

조선백자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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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이야기] 토야가 들려주는 도자기의 역사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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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이야기] 토야가 들려주는 도자기의 역사④



 

 

 

 

  안녕하세요, 블로그지기 토야입니다.

우리나라의 도자기 역사는 크게

고려청자, 분청사기, 조선백자로 구분할 수 있는데요.

지난 시간에 중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우리나라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고려청자 이야기를 해드렸는데요.

오늘은 고려청자의 뒤를 잇는

분청사기 이야기를 들려드릴께요.

그럼 지금부터 토야와 함께

Here we go~ 자기~♥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멋 

 

 

 


고려시대 고려청자를 시작으로

우리나라도 본격적으로

도자기 기술이 꽃피우게 되는데요.

전시간에 이야기한 것처럼

고려청자는 최고의 도자기로 평가받아왔습니다.

 

그러다 고려말에 접어들면서

왜구의 출현과 혼란한 정세로 인해

상감청자를 만들던 장인들이

전국 각지로 흩어지게 되고,

생계를 위해 조잡한 청자를 만들게 되는데요.

이것이 분청사기의 시작이었습니다.

 

 

 

 

분청사기의 특징은

청자에 분을 바른 점인데요.

분장한 회청색의 사기라는 뜻인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를 줄인 말로

고유섭이 명명한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습니다.

 

 

 

 



귀족적이던 고려청자와 달리

분청사기는 실용성이 강조되어

자유분방한 매력을 지녔습니다.

덕분에 민간에서는 물론 조선왕실에서도

두루 사용되면서 성행하다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안타깝게도

그 맥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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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이야기] 토야가 들려주는 도자기의 역사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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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이야기] 토야가 들려주는 도자기의 역사③



 

 

 

 


 안녕하세요, 블로그지기 토야입니다.

벌써 도자기의 역사 세번째 시간이네요!!

그래서 오늘은 도자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고려청자에 대해서 들려드리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소개해 드린 것처럼

통일신라 시대까지만 해도 도자기는

토기 수준에 머물러 있었으며,

실용적인 측면만 강조되어 왔습니다.

대신 서역에서 수입한 유리제품이

사치품으로 귀히 여겨졌다는 사실,

다들 기억하고 계시죠?

 

하지만 도자기를 만드는 기술은 점점 발전하였고,

고려시대에 청자와 백자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청자는 발전을 거듭해 종류도 다양해지고,

그릇의 모양이나 문양, 구워내는 수법 등에서도

고려만의 독특한 특징을 나타내게 되는데요,

지금부터 들려드리겠습니다~! 자기♥

 

 

청자의 기원, 고려청자의 탄생

 

 

 

 도자기를 만드는 기술은 중국으로부터 전파되어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요.

중국인들은 푸른 옥(玉)을 매우 좋아하였는데,

실제 옥은 귀하고 비싸서 쉽게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흙으로 옥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청자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러한 중국의 청자를 만드는 기술이 고려에 전파되었고,

고려만의 독특한 특성과 함께 점점 발전하였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고려청자입니다.

 

 

 

 

고려청자는 오늘날에도 세계적으로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고 있는데요.

당시 중국의 송나라 사신도 고려청자를 보고는

'고려의 비색은 천하 제일'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하며,

송나라 태평노인은 고려청자를

천하제일품의 하나로 선정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청자기술을 받아들였지만,

오히려 중국보다 더 뛰어난 청자를 만들게 된거죠.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어낸 그릇 가운데

가장 훌륭한 그릇 중 하나로 평가받는 청자.

그 중심에 고려청자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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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여행가는날]곤지암도자공원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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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여행가는날]곤지암도자공원 나들이~!

 

11월의 마지막 주 수요일곤지암도자공원과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향한 곳은
다양한 전시가 진행중인 경기도자박물관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곳은 도자문화실 입니니다^^
도자의 개념부터 역사, 제작하는 기법 등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죠^^

 

 

 

 

 

어려울 것만 같았던 역사나 도자 작품의 대한 이해, 감상법 등
시각적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전시여서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층으로 올라가면 어떤 전시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손물레는 이미 1층에서 도자에 대한 기본 개념을 익혀
어떠한 전시도 잘~ 감상할 자신 있습니다^^

 

 

짠~!
한국인이 빚어낸 아름다움~!!!
과연 그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 일까요~!?

 

 

 

고려시대부터 현대까지
1000년의 시간을 아우르는 이번 전시를 통해
고려청자는 물론 조선시대 분청과 백자의 변천과정과 특징을 살펴보고
한국 도자의 전통이 현대로 계승되어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였습니다^^

 

 

2층의 또 하나의 전시~!
가마터발굴, 그 10년의 여정
총 3부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 10여 년간 발굴, 조사
경기도에 있는 조선시대 가마터들 가운데
대표적인 가마터 9곳을 선정하여 조사성과와 함께
공개하지 않았던 새로운 발굴자료들을 종합적으로 소개하는 전시죠^^

 

경기도자박물관을 나오면 전통공예원에서도 전시가 진행중입니다^^
잊지 말고 꼭! 관람하셔야 해요~!!

 

 

 

 

 

전승도예가 및 현대도예가들이 재창조한 달항아리 20점을 볼 수 있는 기회!!
달항아리의 아름드리 풍채를 온몸으로 느껴보세요^^
그 매력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할 듯 싶네요^^ 호호>_<

 

가을 여행 먼 곳으로 가지 말고~!
광주로 오세요^^ 알록달록 단풍과 상쾌한 공기
더불어 아름다운 도자작품까지 한번에 관람할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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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S라인 몸매 [청자 상감 구름 학무늬 매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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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감청자

 

<12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고려인의 독특한 청자>

 

상감청자는 반 건조된 그릇 표면에 무늬를 음각한 후, 그 안을 백토나 흑토로 메우고 초벌구이로 구워 낸 다음, 청자유를 발라 다시 구워내는 재벌구이를 하여 무늬가 유약을 통해 투시되도록 제작된다. 상감기법은 고려의 도공들이 처음 창안해 낸 방법으로, 상감청자의 처음 제작시기는 보통 12세기 중엽으로 보는데, 그 이유는 1123년 고려에 왔던 송나라 사람 서긍이 고려청자를 칭찬하면서도 상감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고, 1146년에 세상을 떠난 인종의 장릉에서도 순청자류만 출토되고있는데 반해 1159년에 세상을 떠난 문공유의 묘에서는 청자상감보상당초문의 대접이 발견된 데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청자의 상감기법이 목칠공예의 나전수법이나 금속공예의 입사수법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시기가 좀더 올라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출처 -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cid=200000000&docId=1109605&mobile&categoryId=200000916>

 

 

<청자 상감 구름 학무늬 매병, 13세기 중반, 국보 제68호, 간송미술관>

 

이 매병은 우리나라 상감 청자를 대표하는 것이에요.

늘 연예인들의 비유하는 그야말로 완벽한 S라인 몸매의 상감 청자

 

 

흑백 선으로 두 겹 원을 만들고 그 안에 하늘로 날아오르는 학과 구름을 셋트로 상감했어요.

원 안에 무늬를 넣는 것은 13세기 고려 불화에서

부처나 보살이 입고 있는 옷에도 자주 나타난다고 해요.

 

 

학과 구름은 모두 장수를 상징해요.

12세기 상감 청자 초기부터 꾸준히 사랑받은 무늬로

초기에는 각기 다른 포즈의 두세마리의 커다란 암수 학 사이로

넓은 여백을 두고 영지버섯 모양 구름이 장식되었는데,

13세기 이후 점차 하고가 구름의 크기가 줄어들고 대신 그 수가 늘어가면서 여백은 축소되었죠.

 

아쉽게도 학도 일정한 크기와 형태로 고정되어 갑니다.

몸체와 날개가 뭉뚱그려지고 흑상감으로 찍던 눈동자도

제대로 표현되지 않게되고, 14세기로 가면

그냥 도장으로 학이나 구름을 새겨 그릇에 찍어 놓게 되었습니다.

(장인분들도 귀찮으셨나봅니다 ㅠㅠ)

 

유약의 색은 짙은 회청색이며 잔금이 있고 유약이 두껍게 입혀져 군데군데 뭉친 흔적이 보이지만,

당당하고 유연한 형태와 틀 잡힌 상감 무늬가 단연 돋보이는

그야말로 완벽한 S라인 도자기 몸매를 대표하는

청자 상감 구름 학무늬 매병!

 

우리집 창고를 뒤지다 보면 하나쯤 있으려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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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연적] 국보 제 270호 청자 원숭이 모양 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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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연적] 국보 제 270호 청자 원숭이 모양 연적

 

청자 원숭이형 연적 - 12세기 전반, 높이 9.9cm 길이 5.8 x 5.6cm, 국보 제 270호, 간송미술관

 

 마치 쪽빛 연못에서 목욕을 마치고 막 나온듯 온통 비색으로 물든 모자 원숭이 모양의 연적.

어미와 새끼라는 것을 보여주듯 서로의 몸을 꼭 끌어안고 있는, 모자간의 정을 보여주는 작품같아요.

위의 작품은 그냥 장식용이 아닌 12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연적입니다.

 

연적 - 붓글씨를 쓸 때 벼루에 붓는 물을 담아 두는 문방구중 하나입니다.

문방사우 는 아니죠? 문방사우는 제 기억이 맞다면 아마도 붓, 먹, 벼루, 종이?

요즘에도 학교에서 붓글씨를 쓰는지 모르겠네요.

저 어릴적엔 연적으로 벼루에 물을 조금 붓고, 먹을 갈아서 썼는데, 언젠가부터 벼루, 물 대신에

먹물을 쓰는거 같더라구요. (세상 참 편해진거 같네요)

 

 

이 연적을 잘 보시면 어미 원숭이로 보이는 큰 원숭이의 정수리에 물을 붓는 구멍이 있고,

어미는 새끼를 양 손으로 껴안고 있습니다. 어미를 바로 보기 위해 고기를 뒤로 젖힌 새끼 원숭이의 머리에

물이 나오는 구멍이 있어요.

 

긴 손과 구부린 두 무릎사이에 새끼를 안고 있는 어미 원숭이의 모습은 어느 동물원에 가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모습으로 원숭이의 본능적인 모습이라고 하네요.

 

1998년 우표 발행

 

흑상감으로 표현된 까만 누을 새끼에게서 떼지 못하는 어미는 툭 튀어나온 입과 긴 귀,

납작한 코와 오동통한 손과 발 등 실제 원숭이와 똑같이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형상화 되었다고 하네요.

 

원숭이는 오래전부터 십이지의 하나로 동양에서는 매우 신성하게 여기던 동물로서,

우리나라 토종 동물은 아니지만, 똑똑하고 민첩해 사랑을 받았다고 하네요.

 

불교에서는 원숭이가 잡귀를 물리치는 주술적 힘을 가졌다고 믿어 절의 지붕에 원숭이 상을 세웠고,

도교에서도 원숭이가 무릉도원에 산다고 하여 무릉도원의 상징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원숭이의 자연 서식지로는 적합하지 않아 외국에서 수입해 길렀는데,

이런 점을 생각하면 제작자의 관찰력이 참 대단한거 같아요.

 

그럼 우리나라에 많이 있는 동물들로 연적을 만들지 왜 보기도 힘든 원숭이로 만들었을까요?

 

그건 중국어에서 원숭이의 후(猴) 발음이 제후의 후(侯)와 같아서 원숭이는 제후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합니다.

즉, 이 연적을 써서 열심히 학문에 정진하여 높은 벼슬을 얻으라는 뜻이 담겨있는 거죠.

 

이 청자 원숭이모양 연적 처럼 모자가 등장하면 대를 이어 높은 지위에 오르기를 기원하는 뜻이래요.

 

오늘은 국보 제 270호 청자 원숭이 모양 연적을 살펴봤는데요,

사실.. 저라면 귀찮아서라도 연적안쓰고 대충 물그릇에 담아서 쓸것 같은데 말이죠.. ^^a

가만히 보고 있으니 고려 장인들의 탁월한 조형감각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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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조선초 가마터가 추가로 발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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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이천 세라피아]

 

 

서울 강북구 일대에 고려말~조선초 가마터가 추가로 발굴되어 

고려 말에서 조선 초 무렵 도자기 생산이 활발한 지역이었음이 다시 한번 입증되었는데요,

 

 

이 일대에서 고려 말~조선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가마터가

지난해 8발굴 된 후, 또 다시 가마터가 발견된 것입니다.

 

 

이 곳에서는 15세기 초로 추정되는 가마1기와 함께

불량 도자기를 버리는 폐기장과 도자기 파편들도 대량으로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사진 : 백자상감모란문발]

 

가마 및 폐기장에서 출토된 유물은 이번 발굴지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수유동 청자요지에서 지난해 출토된 14세기 말에서 15세기 초의 유물과

유사성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발굴작업에 참여한 학예연구사는

강북구 수유동과 우이동 일대는 북한산 계곡과 우이천 등에서 물을 쉽게 구할 수 있고,

도자기의 재료가 되는 점토, 도자기 굽기에 필요한 나무 등 도자기 생산에 필요한

필수요소가 잘 갖춰져 있어 이곳에 가마터가 만들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진 : 분청사기연화문합 ]

 

 

전문가들은 북한산 일대에서 실시된 이번 발굴이

고려청자가 분청사기를 거쳐 조선백자로 넘어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고,

서울지역에서도 여말 ~ 선초의 가마터가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의미 있는 발굴이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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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 간에 본격적인 도자예술 작가교류가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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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 간에 본격적인 도자예술 작가교류가 시작됐습니다~*

 

 

지난 16일 중국청자의 본 고장인 용천(龍泉)에서 개막된 한중도자예술교류전은 작품전시 차원을 넘어 전문 예술인들의 인적 교류시대를 예고하였는데요,

 

 

 

우리에게 고려청자가 있다면?!

 

 

 

중국에는 옥처럼 아름다운 유색을 자랑하는 용천청자(龍泉靑瓷)가 있습니다.

용천정자는 중국을 대표하는 청자로 생산규모와 수출량이 많아 전 세계적으로 그 영향력을 미쳤다고 하는데요,

 

 

오대십국(907~960)시기에 처음 출현되어 청대(淸代)중기에 이르기까지 800여 년 간 제작되었던 용천청자의 위상은 아시아를 넘어 멀리 아프리카, 유럽 등으로 전파되었다고 합니다.

 

 

용천시는 인구 28만 명 가운데 도예산업 종사자만 13천 명이라고 하는데요,

1,600년의 청자역사를 중국 브랜드로 활용하겠다는 주은래 총리 지시에 따라 1957년에 국영용천도자공장을

설립하고 국가의 지원과 지방정부 및 민간예술가의 공동 노력으로 위기 직전의 전통도자를 세계적인 청자산업 브랜드로 발전시켰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찍부터 청자 제작기술이 발달해 중국 용천청자의 수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다양한 무역선의 중간 기착지였던 제주도 근해, 영광, 보령 등에서 출토되었답니다.

 

 

한국도자재단과 중국도자공업협회가 각각 100인씩 선정, 용천청자축제 특별전으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한국 도자예술을 대표하는 인사들이 대거 초청되었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인적교류가 시작됐다는 의미로 이번 교류전시의 가장 큰 성과로 꼽힙니다.

 

 

 

 

'한중도자예술교류전'에는 김세용, 박부원, 최인규, 김정옥, 신현철 등 한국 전통도자의 맥을 이어온 도예 명장을 비롯,

 

 

이천·광주·여주도자기조합의 이대영, 심정섭, 김종성 이사장 등 30명이 참석했으며,

 

 

이번 전시는 중국 용천에서 1215일까지 한 달 동안 열립니다.

 

 

 

 [ 사진은 청자 이중투각기법 으로 제작된 세용 도예명장의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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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흙, 검은 빛으로 빚어진 ‘흑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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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무쌍한 모든 색의 모태가 되는 색은 검은색

 

 

이라고 표현하는 작가 김시영씨는

청자도 백자도 아닌 검은 도자기 흑유를 굽습니다.

 

 

 

 

청자, 백자는 많이 들어봤지만 흑자는 어쩐지 낯설어, 그런 것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흑유는 청자나 백자, 분청 만큼 알려지지 못했는데요,

 

 

[김시영 : 흑유달항아리(Black Glaze Moon) 2011 / 물레성형, 적토,고령토]

 

 

흑유는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까지 발전하였지만 청자나 백자에 비해 질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점점 쇠퇴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서도가인 아버지의 먹을 갈아드리며 검은색과

인연을 맺은 김시영 작가

 

 

자신이 나고 자란 고장 가평 흙에 대한 집요한 연구를 통해

검은 색 속의 만가지 색을 찾아내는데 성공하게 되는데요,

 

 

흑유는 불에 굉장히 민감하기 때문에

빚는 법은 비슷해도 불의 온도나 굽는 방식에 따라

매번 다른 색이 나온다고 합니다.

  

 

, 안료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흙의 융점을 찾아서 불의 온도와 시간에 따른

감과 컬러를 만들어 낸 다는 것인데요,

 

 

[김시영 : 흑유초문불항아리(Black Glaza Chomun) 2005 / 물레성형, 적토, 고령토]

 

이렇게 구워진 흑유는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색을 표현해줍니다.

 

 

<분청은 가마온도가 1230 ℃, 청자는 1270 ℃, 흑유는 13에서 구워집니다~*>

 

 

아직은 미완성 이지만,

고려 청자와 함께 서민의 삶이 녹아 있는 "흑유"가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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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의 또 다른 이름 ‘비색 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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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들이 청자의 푸른 빛깔을 표현한 특유의 단어 비색

 

고려청자는 중국 송 청자의 영향을 받았지만 송 청자와는 다른 비색의 아름다움이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푸른색의 유약은 광택이 은은하고 안정감을 주는 반투명의 비취색을 띠게 되는데요,

이 빛깔은 동양에서 매우 독자적인 성격을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는 귀족사회의 발달로 호화로운 예술문화도 함께 발달하였습니다.

고려인들은 식기뿐만 아니라 집을 장식하는데 있어서도 청자를 활용했다고 하는데요,

 

청자 기와, 연봉(연꽃 봉오리 모양으로 일종의 기와를 꾸미는 장식), 장식용 자판(현대의 타일 혹은 액자로 추정)

당시 사람들에게 청자는 그릇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다양하고 세련된 기형을 지닌 고려청자는 모양뿐만 아니라 표면에 장식된 연꽃 무늬, 국화무늬,

반복적인 기하학적 무늬로 그 우수성을 더하고 있는데요,

 

지난 2007년 태안 바다에서 쭈꾸미 덕분에 건져 올려진 두꺼비 모양 청자 벼루

(12세기 초 강진에서 만들어 개경으로 운송 중 이였던 이 청자 벼루는 바닷속에 침몰한 고려시대 청자 운반선에서

도자기 25천점, 목간 20점과 함께 발견되었습니다.)는 보물로 지정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타임슬립을 소재로한 드라마에서 '고려청자'에 탐을내는 모습이 그려져 웃음을 자아낸 장면도 있었는데요,

이런 보물을 하나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출처 : 드라마 신의방송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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